요한복음 4장 : 어느 물동이의 파산 선고 - "우물가에 버려진 낡은 허무의 기록" 지글거리는 정오의 태양 아래, 메마른 땅 위에 덩그러니 놓인 흙빛 물동이. 그 너머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여인의 잔상 01. 지글거리는 정오, 살을 파고드는 비참의 무게 지글지글. 사마리아의 태양은 자비가 없습니다. 대지는 바짝 말라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고, 길가에 흩어진 돌멩이들은 열기를 머금어 뜨거운 숨을 토해냅니다. 오늘도 나는 그녀의 마른 어깨 위에 얹혀 이 형벌 같은 길을 나섭니다. 나는 수가성 여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그녀의 은밀한 수치심을 담아 나르는 낡은 흙구이 물동이입니다. 그녀의 어깨가 내 차가운 입술에 닿을 때마다, 나는 그녀의 살결에서 배어 나오는 찝찔한 땀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