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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일기] 베다니의 비명: 어느 무덤 돌이 기록한 ‘생명의 중력’

슬기로운 GLOGOS 방송 생활 2026. 5. 7. 23:25

베다니의 비명: 어느 무덤 돌이 기록한 ‘생명의 중력’

 

     01. 어둠을 봉인한 자의 고독한 하중

     나는 베다니 외곽,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동굴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육중한 원형 돌'이다.

 

     나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드는 것이다. 내 피부는 이끼와 먼지로 뒤덮여 차갑고 단단하며, 내 등 뒤로는 단 한 점의 빛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인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나사로라는 사내가 내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그의 마지막 숨결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나를 굴려 입구를 봉인했다. 그때 내 몸을 타고 흐르던 것은 슬픔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거대한 권력이 주는 '차가운 안정감'이었다. 나는 누구도 이 문을 열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공감각적 기록: 무덤의 대기]

  • 촉각: 눅눅한 지하의 습기와 시신을 감싼 세마포에서 풍기는 침침한 냉기가 나의 안쪽 벽을 핥고 지나간다.

 

  • 후각: 썩어가는 육신이 내뿜는 진하고 무거운 죽음의 향취, 그리고 그것을 덮으려는 향료의 매캐한 냄새가 내 모공 사이사이에 박힌다.

 

  • 청각: 밖에서는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안쪽에서는 오직 정적만이 고체처럼 굳어 있었다.

 

     02. 균열: 존재를 뒤흔든 눈물과 주파수

 

     그날, 평소와 다른 진동이 나를 깨웠다. 무덤 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부조리를 향한 '거룩한 분노'이자, 피조물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창조주의 신음이었다.

 

그리고 들려온 명령.

 

"돌을 옮겨 놓으라."

 

     사람들의 손이 내 몸에 닿았다. 그들은 주저했다.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하지만 그분의 의지는 나의 육중한 하중보다 더 강력하게 나를 밀어냈다.

내가 서서히 옆으로 굴러가며 빛의 경계선이 생기는 순간, 나는 보았다. 주님은 무덤 입구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계셨다. 무덤 옆 돌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눈물 어린 시선으로 어둠 속을 묵묵히 바라보고 계셨다. 그분은 나를 직접 만지지 않으셨지만, 그분의 존재 자체가 뿜어내는 '생명의 중력'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03. "나사로야, 나오라": 빗장이 꺾이는 찰나

 

     마침내 그분이 외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 음성은 파동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 소리가 내 몸을 통과할 때, 나는 수천 년간 유지해온 나의 단단한 분자 구조가 일순간 해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죽음의 법칙으로 꽉 잠겨 있던 내 등 뒤의 빗장이 그 음성 한마디에 맥없이 꺾여 나갔다.

 

     [생명의 감각]

  • 시각: 칠흑 같던 무덤 안으로 쏟아지는 태양 광선.
  • 청각: 썩어가던 근육이 되살아나고, 멈췄던 심장이 다시 고동치는 육중한 울림.
  • 촉각: 수족을 베로 동인 채,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한 남자의 살아있는 무게감.

 

     04. [통렬한 자정] 당신은 무엇을 봉인하고 있는가

 

     오늘, 나사로를 가두었던 이 무거운 돌의 시선을 통해 우리 내면의 무덤을 응시해 보라.

 

     당신은 혹시 겉모습만 단단한 무덤 돌로 서 있지는 않은가? "이미 늦었다", "벌써 냄새가 난다"며 스스로 포기하고 무거운 돌로 봉인해버린 꿈, 관계, 그리고 신앙의 불씨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죽음의 냄새를 핑계로 생명의 빛을 거부하며 살았는가.

 

     회개한다. 주님이 돌을 옮기라 하실 때, 부패의 논리를 앞세워 주님의 권능을 제한했던 나의 불신을 자복한다. 돌인 나조차 그분의 음성에 반응하여 몸을 움직였는데, 당신의 심장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돌덩이로 남아있지는 않은가.

 

     05. 수의를 벗고 빛으로 걷는 결단

 

     나사로는 걸어 나왔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주님은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인간이 스스로 돌을 옮기고, 스스로 나사로를 풀어주기를 기다리셨다. 기적은 주님이 하시지만, 그 기적의 문을 여는 손길은 우리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결단하라. 이제 당신의 무덤 돌을 굴려 버리라. 주님의 음성이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던 당신의 과거에서 당당히 걸어 나오라. 당신을 묶고 있던 세마포와 수건을 벗어 던지라. 당신은 더 이상 어둠의 소유가 아니다.

 

     오늘 밤, 당신의 닫힌 무덤 문을 두드리는 그분의 눈물 어린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나사로야, 나오라!" 그 부름이 바로 당신을 향한 해방의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