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존재의 임계점을 넘는 밤 - 니고데모의 등불이 본 기록

푸른 새벽빛이 감도는 예루살렘의 좁은 골목길, 망토를 뒤집어쓴 니고데모의 손에서 흔들리는 작은 등불
01. 고요한 불연속의 밤
예루살렘의 밤은 질서 정연했다. 석조 건물들은 차가운 침묵을 지켰고, 법도와 지식은 낮의 권위를 유지한 채 잠들어 있었다. 그때, 한 남자의 거친 손이 나를 집어 들었다.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불리는 니고데모. 그의 지성은 대낮의 태양처럼 명석했으나, 오늘 밤 나를 쥔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지독한 존재론적 허기에 떨리고 있었다.
그는 타인의 시선을 피해 나를 망토 안으로 깊숙이 은폐했다. 폐쇄된 망토 속에서 나는 그의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평생 공들여 쌓아온 지식이라는 성벽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 생겨버린 자의 실존적 비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종교적 체면을 밤의 어둠 속에 매장한 채, 오직 나라는 작은 불꽃에 의지해 '진리 자체'라 소문난 그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02. 지식의 등불이 꺼져가던 찰나
좁은 골목을 비추는 나의 흐릿한 광원 위로 니고데모의 눈동자가 비쳤다. 그는 율법을 해부하고 하늘의 이치를 논하던 자였으나, 오늘 밤 그의 눈에 담긴 것은 거대한 미궁(迷宮)이었다. 지식은 그에게 세상의 길을 가르쳐주었으나, 정작 영혼이 머물 안식처는
가리켜 보이지 못했다. 나는 그의 망토 안에서 기름을 태우며 생각했다. '이토록 많은 정보를 소유한 이가, 왜 이토록 칠흑 같은 밤을
헤매고 있는가.'
마침내 그분을 마주했다. 주인님은 자신의 품격을 유지하려 애쓰며 첫 문장을 뗐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분은 주인님이 준비한 수식어를 단숨에 해체하고 그의 영혼을 정면으로 직면하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 순간, 주인님의 손이 크게 휘청였다. 나를 담은 놋그릇이 부딪히며 서글픈 금속음을 냈다. "늙은 내가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주인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평생 구축해온 논리의 탑이 단 하나의 선언 앞에서 붕괴되는 소리였다.
03. 기류(氣流)의 신비와 존재의 울림
그분은 차분히 말씀하셨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소리는 실재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자도 그러하다고.
나는 목격했다. 니고데모가 평생 붙들고 있던 '정답'이라는 가느다란 등불을 내려놓고,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바람'의 신비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하는 그 찰나를. 그의 눈가에 맺힌 것은 인지적 이해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근원적 사랑 앞에, 자신의 유한함을 비로소 인정한 피조물의 거룩한 전율이었다.
그분은 니고데모의 무지를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어둠의 심연 속에 '독생자'라는 가장 찬란한 빛의 상수를 밀어 넣으셨다.
주인님은 더 정교한 지식을 얻으려 왔으나, 그분은 그에게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통째로 안겨주고 계셨다.
04. 빛의 소멸, 그리고 새로운 여명
밤은 여전히 깊었으나, 돌아오는 길의 니고데모는 더 이상 망토 속에 나를 숨기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이성은 이해하지 못한
신비로 가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를 쥔 그의 악력에는 이제 신경질적인 떨림 대신 묘한 평안이 서려 있었다. 그는 이제 외부의 불빛에 의지해 길을 찾는 나그네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점화된 새로운 생명의 빛을 응시하는 자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니고데모처럼 각자의 등불을 들고 밤길을 걷는다. '나'라는 자아가 쌓아온 이력, 경험, 상식이라는 작은 등불 말이다. 그러나 그 등불로는 결코 영혼의 아침을 불러올 수 없다. 등불의 유효 기간은 오직 이 밤의 끝에서 영원한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빛 앞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보폭까지만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내가 들고 있던 낡은 등불을 끄고 그분의 광대함 안으로 자발적으로 소멸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밤의 끝자락,
니고데모의 등불이었던 나는 이제 기쁘게 나의 불꽃을 줄인다. 그분이라는 거대한 태양이 이미 그의 영혼 위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유의 흔적]
오늘 당신이 들고 있는 등불은 무엇입니까? 혹시 너무 선명한 내 지식의 불빛 때문에, 정작 당신을 찾아오시는 그분의 신비로운 바람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니고데모가 그러했듯이, 때로는 나의 정답을 버리고 이해되지 않는 어둠 속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텍스트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 자체를 다시 시작하게 할 거대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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